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전에는

한국에서의 푸틴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러시아 경제발전을 시킨 공로도 있고, 정상회담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스를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나라와의 무역에서 따로 트러블이 없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전쟁 이후.. 신냉전의 최악의 지도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푸틴이라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련된 정보를 

정리하고, 요약해서 보여드리려 합니다. 


푸틴 행적, 프로필

이름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키 : 172↓cm(추정)

나이 : 1952년 10월 7일생(69세)

학력 : 레닌그라드 대학 법학·국제학 석사, 러시아 국립광산대학교 박사, 용인대학교 유도학 명예박사

정당 :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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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총리

1996년 8월~1996년 12월

제2대 대통령

2000년 5월~2008년 5월

제6대 총리(2기)

2008년 5월~2012년 5월

제4대 대통령

2012년 5월~현재

 

 

 


정계에 진출하기 전의 생애

푸틴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세계  2차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팔을 잃은 상이군인이었습니다.

아내와 세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일찍 죽었고

셋째 아이로 푸틴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집안의 경제를 지탱할 사람이 없어

집안에는 쥐가 기어 다녔다고 합니다.

푸틴은 어린 시절 많은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폭력으로 동급생의 돈을 뺏고, 아버지와 싸우기도 하였죠.

 

비행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지다가, 고등학교 고학년 말에 철이 들어

공산당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성적이 오르며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푸틴은 철이 들고 공부를 하게 되며 

유도와 같은 운동이나, 세계사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현했습니다.

푸틴은 당시 스파이 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유도 실력은 프로급이며, 후에 용인대학교에서 한미 수교 20주년 기념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스파이에 대한 선전이 많았는데, 특히 소련은 더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사로잡힌 푸틴은 일찍부터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을 준비했으며,

KGB요원의 조언을 따라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였고, 재학 도중에 KGB 수습 요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KGB에서 인정받고 정규 요원이 된 그는

007 같은 특수요원이 아닌, 서류업무를 맡는 운영 전문요원이 되었습니다.

 

KGB로서의 기본적인 실력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 같지 않던 요원 생활을 보내던 중

소련이 해체되었고 KGB는 무너졌습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푸틴은 택시 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계 진출

소련이 해체된 후에도 푸틴은 삶을 영위하는 사업을 하면서도

KGB와 관련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고, 자신과 연이 있던 옐친의 측근 베레좁스키의 추천에 의하여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총리로 깜짝스레 발탁됩니다.

 

베레좁스키는 레임덕이 올 것이 뻔한 보리스 옐친의 실망적인 정국 활동을 보며,

푸틴을 대체제로 상정했던 것이고, 푸틴이 총리로서의 일을 잘 해내고 2차 체첸 전쟁을 잘 지휘하며
국민적인 인기를 끌자 보리스 옐친은 푸틴에게 대통령 대행 직위를 넘겨주며 사퇴합니다.

 

보리스 옐친이 사퇴한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되는데

사퇴의 핵심은 푸틴의 옐친 보호 보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얽혀있는 부정부패 문제가 많았었는데

푸틴이 대통령이 되면 이 사실들을 터치 안 하고 면책 특권을 보장해준다 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후에도 옐친과 푸틴의 사이는 좋았고 옐친의 사후 장례식도 성대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맡게 된 푸틴은 세계사에 발을 들였고,

임기 대행이 끝난 다음의 2000년 대선에서 53 퍼의 표를 득표하며 제2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대통령이 된 푸틴은 언론탄압, 정치 스캔들이 많았지만

국가 내의 잔재 체첸 반군을 숙청하고 테러 제압을 지휘한 행동,

그리고 천연가스 판매, 공급 노선을 만든 뒤 유럽에 공급하며 생긴 돈으로

인프라를 확충하여 러시아의 GDP와 실질 소득을 높였습니다.

 

푸틴의 독선적 행적에도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이때의 일들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3선 금지 원칙에 따라 3선 대통령은 출마 못했지만,

 

제3대 대선에서

푸틴의 오른팔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본인은 총리로 재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드미트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모든 지휘는

푸틴이 결정하고 푸틴에게 보고하는 등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드미트리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기 전에 3선 연임 금지법안을 폐지하였고,

이 사건으로 지금까지 푸틴이 연임하고 독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었습니다.

 


 

푸틴에 대한 긍정적 평가

 

푸틴은 어쨌든 간 소련 붕괴 이후, 지옥 같던 러시아의 경제를 끌어올려놓았으며

대중교통의 현대화, 이전까지는 없던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가끔씩 투표에서 130%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또한, 외교에서 자신이 소련 시절부터 만들어놓은 카리스마로 상대 수상의 기선을 제압하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등 러시아 국민에게 외교적 평가가 좋기도 했고요.

 

 


푸틴에 대한 부정적 평가

러시아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다시 러시아는 지옥에 들어갔고

우크라이나도 지옥으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카리스마가 아닌, 실제 성격이 불같고 비행 같다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2014년에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에 군 개입을 하여 돈바스 지역을 전쟁 위험 구역, 갈등 구역으로 만들고

흑해로 나아가기 위해 크림반도에 군을 주둔시키고 자치투표를 하게 만들어 영토를 강탈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생긴 갈등에 우크라이나에는 반러 정서가 깔려있었고,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나토 연방 가입을 서둘렀고 러시아는 이를 전쟁으로 대처하였습니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죠.

 

또한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강압적이기도 한데, 각국의 수상들은 예를 차렸지만 푸틴은 카리스마를 차렸습니다.

항상 외교 담화 때 늦거나 자신의 맹견을 데리고 다녔으며

각 수상들은 민망한 꼴을 보기도 하고, 푸틴의 3시간 지각을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또 러시아가 단기적 성장을 하긴 했어도

국가규모의 부패와 횡령이 심해 빈부격차가 심각합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각국에 제제를 받으며

푸틴이 나이가 들어 정신이 헛돌았다 라는 설도 돌고 있습니다.

세계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IMF 때 보다 금리 변동이 심해지기도 했고요..

 

 

혼란한 신냉전 속에 불을 켠 푸틴의 향후 행로는 어떻게 되고,
그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을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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