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된 우크라이나 내의 국제공항

개전의 과정

 

2월 18일

조 바이든이 "푸틴은 전쟁을 준비하고있다."라고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한 뒤,

푸틴은 "전쟁은 절대 없다"라는말로 전쟁을 부인했었습니다.

 

하지만

푸틴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신에 [군사작전]이라는 말로 언어장난을 하며

2월 24일 목요일에 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개전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 

대립상황속에서 우크라이나는 항상 전쟁을 거부하고 서방에 도움을 요청했었으나

푸틴의 독단적인 전쟁선언에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

 

"침략"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도망가는 우크라이나 시민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상하거나

우크라이나의 수도[키예프]를 2월 26일토요일까지 점령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으로 아직 점령하지 못한채 침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27일 일요일에도 키예프 완전 점령을 목적으로 진군했으나
우크라이나의 견고한 방어에 점령을 실패했습니다.

 

전쟁의 원인?

전쟁의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해야하는 몇가지 부연설명들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생긴 국가입니다.

근대의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과 정치하는 각 당들은 50 대 50으로 친러와 반러가 포진했었습니다.

2010년 야누코비치는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되고나서부터

흐름은 친러로 기울어졌습니다.

 

극단적인 러시아와의 친분 강화, EU와 NATO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갖음으로서

많은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각 정당들은 이 행동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요구들을 묵살한체 친러행동을 계속 했었으며,

야누코비치 산하 정치인들의 큰 비리들이 계속 터지며 민중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시작된 시민들의 시위, 2013년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고

그 시위는 유로마이단이라 불리웁니다.

 

야누코비치의 극단적 친러시아 정책으로 생긴 극단적 서방(EU,NATO)주의 유로마이단.

두 정치이념이 크게 충돌하고, 많은 사람들도 극단적인 정치운동을 전개하며

이전에 없던 규모의 친러,반러의 세력들이 생겨나게되고, 대규모 유혈사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와 동부는 러시아에 경제를 의존하던 지역이 였고,

국경 근처에 서로간의 혈연들이 많았어서 친러가 많았습니다.

 

야누코비치를 반대하는 유로마이단 세력으로 촉발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크림반도, 동부사람들의 우크라이나, 반서방 혐오 및 반발감이 커져가며 그들은 2014년에 크림공화국으로 분리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동부의 반정부 시위는 돈바스전쟁으로

크림반도의 독립선언 및 반정부운동은 2014년 크림위기로 이어집니다.

 

유로마이단 운동의 전개로

친러의 부패한 암군 야누코비치는 축출되었고, 혁명은 성공으로 흐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크림반도와 돈바스지역은 지속해서 반정부 시위를하였고,

시위가 고조되던 중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이 독립선언(크림반도는 러시아에 병합)에 우크라이나는 반대했지만,

친러성향의 국가11개, 그리고 러시아는 이 독립선언을 받아들이고

자국민과 자치정부들을 보호하겠다는 푸틴의 선언에

러시아의 군대가 크림반도로 들어오고

돈바스 반정부 측에 무기를 지원해주게 됩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돈바스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반정부운동 및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이유

이렇게 영토를 유린당한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여 국경을 확실하게 하고 러시아에게 휘둘리지 않고 싶어했으나,

나토는 여러 이유를 대며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지연했었습니다.

 

나토의 반러 최전선은 폴란드로 이미 나토 안에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소극적이였던 것이죠.

 

하지만 나토에 가입하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더욱 커진 눈엣가시였습니다.

서방세력이 더 러시아에 가까워지는 거에대한 거부감이 있던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견제했고

이 대립이 2021년까지 왔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해체되며 1800개의 핵운용 무기들을 얻게되었습니다.

 유럽의 서방국들과 미국이 지켜준다는 약조아래, 냉전을 끝내고자 이 무기들을 반납하거나 폐기시켰었습니다.

물론 당시우크라이나는 그 무기들을 운용할 돈이 없었지만 핵무기 자체가 갖는 상징성은 다른 것이였죠.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큰 사건이였습니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를 보호하고 탈레반을 누르기로 약조했었기 때문인데, 이가 우크라이나에게 했던 약속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로 미군이 이제 동맹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리관계로 움직이고

소극적이게 되었다는 판단아래 푸틴은 22년부터 극단적인 선언들을 하기시작했고

22년 2월 침략이 시작된 것이죠.

 

현재

현재는 아무도 병력지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지원이 아닌, 소극적인 지원으로 전쟁 물자들만을 제공하고

공식적으로 러시아를 제제한다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나와 수도를 지키고있고,

부패한 관료들은 도망가고 대통령과 몇 군장성만이 키예프를 지키고 있습니다.

 

개전의 시작은 러시아인만큼, 러시아가 무책임한 개전의 대가를 치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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